다양하게 즐기다
요리로 세계여행
자연을 담아 놓은 그릇 안의 유토피아
정갈한 일본 요리
우리에게 있어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역사적으로 얽힌 복잡·미묘한 문제들이 많아서 멀게 느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요리는 친숙하다. 일본의 요리는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을 담아 거스르지 않는 미를 추구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일본은 식생활에 계절의 흐름이 담겨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국토 전체가 섬으로 되어 있어 육류보다는 생선류의 음식이 발달하였다.
글·사진 김현학(iamfoodstylist 대표, 푸드디렉터)
식재료의 담백함을 살리는 맛
일본의 식문화나 조리법을 보면 특징적인 것이 바로
향신료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재료를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가공하여 본연 그대로의
맛을 최대한 살려 담백함과 원재료만의 특성을 맛보게
한다. 양념이나 향신료의 맛에 길들여진 입맛이라면
맛이 없다고 평할 수 있지만 미식교육이나 식재료의
맛을 공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더불어 요리의 시각적인 표현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식재료의 특징과 계절감을 살려 그릇 위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수놓는 플레이팅 기술은
다양한 식기와 재질을 활용해 음식과 어울리는 조화를
꾀한다. 또한 푸짐하게 담는 것보다 색과 모양을
고려해 미적으로 담는 것이 일본 식문화의 대표적인
연출 방법이다.
다채로움을 발현하는 일본의 정찬
일본의 정찬은 다양하다. 일본의 관혼상제 요리인
‘혼젠요리’, 다도에서 차를 마시기 전에 적당히 배를
채워 차의 맛을 돋우기 위해 내놓는 ‘차가이세키
요리’, 혼젠요리를 간소화한 ‘가이세키 요리’, 식물성
재료와 해조류를 사용한 사찰요리인 ‘쇼진요리’ 등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혼젠요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정식에
가깝다. 16세기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요리법으로, 다채로움과 예술성을 담아 발전한
정식 요리이나 현재는 중요한 연회 이외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혼젠요리를 간소화시킨
가이세키 요리가 대중화되었다.
불교문화가 깃들어 있는 가이세키 요리
일본 음식을 논할 때 불교의 사상이 비유적으로 자주
언급된다. 음식을 담는 방법을 수미산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인 수미산을
그릇 안에 담는다는 의미다. 자연물을 축소하고
계절감을 담아 그릇 안에 작은 자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이세키 요리 역시 불교 선종의 한 종파에서
유래한다. 에도시대 이전의 비교적 간소했던 가이세키
요리가 에도시대 이후 하루 세끼 식습관이 정착되면서
풍성해졌다. 지금의 가이세키 요리는 개항 도시였던
오사카에 들어온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서 코스별
요리로 발전하였다. 전체 구성을 보면
쓰키다시(식전요리), 젠사이(전채요리),
스이모노(맑은국), 사시미(생선회), 조림, 구이, 튀김
등으로 꾸며진다. 일본 여행이나 고급 일식집을 가면
흔히 맛볼 수 있는 구성이자, 우리나라의 한정식처럼
손님을 극진히 대접할 때 내놓는 요리 형태이기도
하다.
일본의 젠스타일, 한국의 K-스타일
흔히들 일본의 테이블 세팅이나 정서를 일컬어
젠스타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식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테이블 세팅법이자 라이프 스타일의 한
트렌드이다. 쟁반에 밥을 가져다 먹는 트레이 문화,
작은 종지에 반찬을 소량으로 담아 개인별로 먹는
식문화, 여백을 중시하는 요리 공간의 세팅 등
젠스타일은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물리는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 역시 한스타일이라는 식문화적 트렌드를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K-팝의 열풍에 힘입어 K-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식문화를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젠스타일을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식문화로
여기는 서양인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K-스타일
요리와 식문화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우리의 밥상문화를 보존하고, 한국 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릇을 들고 먹어도 괜찮아
요즘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는 ASMR
먹방이 대세지만, 일본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식사예절을 중시한다. 음식은 작은 접시에 덜어 먹고,
밥·국·반찬 순으로 뚜껑을 열고 식사를 시작한다.
밥은 밥공기를 손으로 들어서 먹고, 국은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국그릇에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신 후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건져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식사 시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식탁에 놓고 먹는 게
올바른 예절이지만, 일본에서는 작은 그릇들을 들어
입에 가까이 대고 먹어도 괜찮다.
지역에 따라 다른 맛을 뽐내는
오코노미야키
언뜻 보면 우리나라의 전과 같아 보이는
오코노미야키는 ‘오코노미=기호’+‘야키=굽다’라는
단어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들을 구워 먹는 요리다. 밀가루 반죽에
고기, 오징어, 양배추, 달걀 등을 넣고 철판에서 구워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그 위에 마요네즈와
가츠오부시를 얹어 맛이 풍성해진다. 고소한
마요네즈와 달달한 데리야끼 소스 덕분에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도 딱이다.
오코노미야키는 지역에 따라서 간사이풍과
히로시마풍으로 나뉘어진다. 간사이풍은 밀가루
반죽에 양배추, 갈은 참마, 튀김 부스러기, 생강 절임
등을 넣고 그 위에 얇은 삼겹살이나 오징어 등을
올린다. 반면 히로시마풍은 면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뜨거운 철판에서 구워지는 내 맘대로 요리
일본의 식문화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어떨 때는 한식문화인지 일식문화인지
헷갈리는 실정이다. 이처럼 여러 문화가 혼용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그 나라의 좋은 부분은 우리에
맞게 발전시키고, 나쁜 건 정확히 알고 거르는 것이
우리의 전통 문화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길일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식문화의 유래를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밥상예절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비슷하지만 다른 듯한 일본의 식문화지만
마음만은 똑같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뜨끈한 한 끼를 대접하는 마음, 그 마음이면
빈대떡이든 오코노미야키든 족하지 않을까 싶다.
오코노미야키
재료(2인분 기준)
양배추 1/4쪽, 베이컨 3줄, 칵테일새우 1/3cup,
부침가루 1/2cup, 튀김가루 1/2cup, 물 1cup, 계란
1개, 가쓰오부시, 데리야끼소스, 마요네즈,
소금·후추 약간
TIP
• 청양고추, 오징어, 다진고기 등 취향에 맞게
재료를 넣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만드는 법
❶ 양배추는 채 썰고, 베이컨은 1cm 간격으로 잘라주고, 칵테일새우는 씻어 준비한다.
❷ 손질한 재료에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❸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두른 뒤 반죽을 앞뒤로 노릇하게 부쳐준다.
❹ 접시에 담아 데리야끼 소스, 마요네즈를 뿌린 뒤 가쓰오부시를 올려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