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게 부치는 편지

___이현 에세이스트

편지에게.
너는 손, 화살, 유리병, 비둘기, 자전거를 구름처럼 타고 네 몸에 쓰인 이름의 주인을 찾아갔지. 그 사람들의 표정을 기억할 수 있겠니?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넌 그들의 반응으로 내용을 추측할 뿐이었지만. 돋보기를 쓰고 민들레꽃 같은 웃음을 터트리던 할머니, 발갛게 물든 볼로 수줍게 미소 짓던 소녀, 얼굴에 검정을 묻히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군인,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너를 들었다 놨던 아저씨. 이들 앞에서 너는 오늘도 제대로 도착했구나 싶은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지. 반면 잠 못 이룬 날도 있었어. 어젯밤 누군가는 널 품에 꼭 끌어안고 끅끅대며 네 몸을 온통 적셨잖아. 잉크가 눈물로 번질수록 네 마음도 까맣게 물들어갔어. 긴긴밤 동안 너는 ‘종이가 운다’ 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었지. 그 모든 날 중에서도 네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널 처음 그들에게 보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이었어. 네가 아는 너의 이름은 편지였지만, 사람들은 종종 너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곤 했어. 약속, 쪽지, 소식, 안부, 선물, 고백, 러브레터…. 누가 쓰고 받는지에 따라 내용과 글씨체는 달라도, 한결같이 나오는 문구들이 있었어. 안녕, 축하해, 고마워, 널 생각해, 부디 잘 지내, 행복해, 보고 싶어. 너는 문득 궁금해졌지. 사람들은 왜 모두 똑같은 말을 주고받는지. 그 반복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러던 어느 날, 너를 써 내려가는 사람의 심장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며 깨달았어. 중요한 건 반복되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에도 차마 전부 담기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너는 이제 ‘이메일’이나 ‘뉴스레터’라는 이름으로 아주 멀리까지 가. 사람들은 너를 터치하며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해.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하지. 사람들은 가끔 편지였던 너를 유치하고 구식이라고 하기도 해. 좋게 말해 클래식하다고 하지만, 철 지난 유행이라나.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 네가 사라져서 낯설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 너라서 너인 줄 모른다는 걸. 너의 이름은 과거보다 많고 다양하고 새로워졌으니까. 이메일, 뉴스레터, 메시지, 메신저, 톡…. 그만큼 너의 몸은 가볍고 짧고 빨라졌지. 안녕 대신 ㅎㅇ, 감사는 ㄱㅅ, 축하할 땐 ㅊㅋ. 간혹 사진이나 귀여운 그림이 글자를 대신하기도 해. 하지만 짧다고 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진귀하고 ‘♡’는 싸구려 감성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중요한 건 무엇을 담았느냐 하는 거겠지. 그렇지만, 가끔 예전의 네가 그립기도 해. 꾹꾹 눌러쓴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도 있고. 너를 기다리는 이들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그리고 ‘누구에게’와 ‘누구로부터’의 의미가 시간이 흘러도 유효하다면, 먼 훗날에도 너의 존재는 잊히지 않을 거야.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새해에는 오래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이들이 부쩍 더 그리워지니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 주렴.

•••
Side Story

@의 탄생
1971년 미국의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이 3.5미터 떨어진 컴퓨터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됐다.
일명 골뱅이 ‘@’가 전자 우표 주소를 이루는 요소가 된 데는 당시 키보드로 입력할 수 있는 특수문자 개수가 몇 개 안 되었기 때문이다.
부르는 이름도 나라마다 달라 한국에서는 골뱅이, 미국은 앳(at) 사인, 이탈리아는 달팽이, 러시아는 강아지, 네덜란드는 원숭이 꼬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