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 즐거움
인문학 식탁
반가운 것을 기다리는 마음
백석(作) 시의 <국수>
새롭게 다가온 2023년을 반갑게 맞이하는 시기이다. 다들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음식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 않나 싶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 깊은 곳으로 한 발짝씩 들어가 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위에 조용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 하나가 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이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녔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아, 이제야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글___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무드앤쿡 쿠킹클래스 대표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온 반가운 것
백석 시인이 어릴 때 추억을 그리워하며 쓴 작품이 있다. <국수>라는 제목의 이 시는 하얀 눈밭에서 산새와 토끼가 평화롭게 노니는 마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시인은 자꾸만 이 아름다운 마을에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온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마치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서 반가운 것이란 바로 ‘국수’를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정다운 이웃과 함께 국수를 만들어 먹던 시절을 의미한다. 시인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뿔뿔이 흩어져버린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국수에 투영했다. 예로부터 국수는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함께 한 음식이었다. 서민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마운 음식이었으며, 좋은 날 가까운 사람들과 나눠 먹는 정다운 음식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국수는 곧 ‘유대감’을 상징하곤 했다.
시인은 눈 내리던 겨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국수를 만들어 먹던 추억을 떠올린다. 동시에 가난했지만 정겹게 삶아가던 모습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이 ‘반가운 것’이 온다는 말을 마치 염원하듯 자꾸만 반복한 것이다. 요즘 우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박했지만 평화로운 고향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국수를 나눠 먹었던 시인의 어린 시절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상은 살기 편리해졌지만 어쩐지 마음은 반대로 흘러갈 때가 많다. 그 어떤 산해진미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낄 때, 마음의 고향에서 먹었던 국수 한 그릇이 절실하다. 시인이 고대하며 염원하던 ‘반가운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소박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것, 국수
백석의 시에서 국수를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담백한 국물에서 우러나는 향을 맡아본다. 마음 한구석부터 조용히 스며들어와 결국 추억 속 저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맛을 일깨우고 만다. 화려하지만 텅 빈 음식들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맑은 국물 안에 정갈하게 담긴 면발을 보고 있자니, 보이지 않는 무언의 힘이 느껴진다. 흔히 ‘진짜는 말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그 어떤 화려한 요리가 부럽지 않다. 제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럴 힘이 배 안쪽부터 뜨끈하게 올라온다. 국수 한 그릇이 주는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입만 즐겁게 하는 현란한 맛은 일시적이지만, 국수가 주는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주는 여운은 길고 오래 간다.
국수에는 만드는 이의 마음이 담겨있다. 맑은 육수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지만 결코 그 요리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버섯, 멸치, 양파, 다시마 등 갖은 식재료를 넣고 누군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깊은 맛을 우려낸다. 이렇게 끓인 국수는 맑은 국물만큼이나 맑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인심 좋던 시절에는 지나가던 걸인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고, 지금도 결혼식처럼 좋은 날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축하를 더해준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는 우리의 삶 또한 국수를 대접하는 일과 같았으면 한다.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함과 따스한 마음마저 담백하게 전해주는 일. 잠시 비바람을 피해 우연히 들른 곳에서 어디선가 풍기는 국수 냄새에 마음 한구석이 말랑해진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시인처럼 다른 이에게 ‘반가운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을 갖추고 있음을 기억하자.
국수의 무궁무진한 세계
사진·레시피___이밥차(www.2bob.co.kr)
산새와 토끼가 평화롭게 노니는 아름다운 마을을 찾은
‘반가운 것’처럼 가족들과 함께 이번 주말 따뜻한 국수 한 그릇 요리해보는 건 어떨까. 다양한 국수 레시피를 소개한다.
바지락칼국수
재료 4인분 기준
바지락(1kg), 칼국수(4인분=450g), 소금(1), 다진 마늘(0.5) 기호에 따라 애호박(½개), 대파 파란 부분(15cm), 미더덕(1컵)
만드는 법
1 — 바지락은 소금물에 담가 2시간 정도 어두운 곳에서 해감한 후, 바락바락 비벼 씻고 찬물(14컵)을 부어 끓인다.
2 — 애호박은 채 썰고, 대파는 어슷 썰어 놓는다.
3 — 다른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끓여 칼국수를 ⅔만 익 혀 건진다.
4 — 바지락이 입을 열면 미더덕과 호박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 후, 익힌 칼국수와 다진 마늘, 대파를 넣고 한 번 더 끓여 마무리한다.
• tip
칼국수는 육수에 바로 넣어도 되지만 따로 삶아 넣으면 국물이 깔끔하다.
조개젓나가사키우동
재료 2~3인분 기준
양파(1/2개), 대파(15cm), 배추(3장=90g), 마늘(2쪽), 시판 사골국물(2컵), 조개젓(1.5), 우동 면(1개), 후춧가루(약간), 기호에 따라 숙주(1줌=60g), 청양고추(1개), 페페론치노(3개) 계량: 밥숟가락
만드는 법
1 — 양파는 얇게 채 썰고, 대파는 반 갈라 5cm 길이로, 배추는 한입 크기로 썰어둔다.
2 — 숙주는 꼬리를 제거하고, 청양고추는 송송, 마늘은 납작 썰기를 한다.
3 — 중간 불로 달군 냄비에 식용유를 둘러 마늘, 페페론 치노를 부숴 넣어 향을 낸다.
4 — 사골국물(2컵), 물(3컵), 양파, 배추를 넣어 센 불로 올려 5분간 끓이다가 대파, 조개젓, 우동면, 후춧가루를 넣어 3분간 끓인다.
5 — 숙주, 청양고추를 올리면 완성!
• tip
우동면은 뜨거운 물(3컵)에 담가 기름기를 먼저 빼주는 것이 좋다.
구운두부온국수
재료 2인분 기준
두부(1/6=50g), 가지(⅓개), 애호박(¼개), 소면(2줌), 설탕(0.1), 간장(1), 까나리액젓(0.5), 다진 마늘(0.3), 후춧가루(약간), 부순 통깨(0.3), 참기름(0.2)_ 육수: 황태머리(1개), 무(½토막=80g), 다시마(1장=10×10cm), 국간장(1), 소금(약간)
만드는 법
1 — 냄비에 국간장과 소금을 제외한 육수 재료와 물(7컵)을 넣고 센 불에 올려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건져 중약불로 10분간 끓인 뒤 체로 건지고, 국간장, 소금으로 간하여 뜨겁게 준비한다.
2 — 두부는 도톰하게 썰어 키친타월에 올린 뒤 소금(약 간)을 뿌려 물기를 제거하고, 가지와 애호박은 얇게 썰어놓는다.
3 — 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중간 불로 두부의 겉만 노릇해질 정도로 구워 꺼내고, 식용유를 더 넣어 애호박, 가지 순서로 살짝 볶다가 양념을 넣어 간한다.
4 — 삶은 소면을 그릇에 담고 뜨거운 육수(2컵)를 부었다가 따라낸 뒤 뜨거운 육수를 새로 붓고, 두부와 채소볶음을 올려 마무리한다.
• tip
소면이 차가워 첫 육수를 부으면 미지근하니, 한 번 더 육수를 부어서 따뜻하게 먹는 게 좋다. 육수를 낼 때 황태머리 대신 국물용 멸치(15마리)도 OK!
편의점표편육쌀국수
재료 1인분
편의점 편육(14개), 쌀국수 컵라면(1개), 설탕(1.5), 소금(0.2), 식초(2), 레몬즙(1), 기호에 따라 양파(1/4개), 고수(2줄기), 숙주(1줌)
만드는 법
1 — 양파는 얇게 모양대로 썰고, 고수는 잎만 떼어낸다. 2 — 손질한 양파에 양념을 고루 버무려 10분간 절이고, 편육은 전자레인지에 30초간 데운다.
3 — 쌀국수 컵라면에 끓는 물(1과 1/2컵)을 넣어 1분간 익힌다.
4 — 그릇에 쌀국수, 절인 양파, 숙주 순으로 올린 후 데운 편육과 고수를 올리면 완성!